저는 옷을 고를 때 색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실루엣이나 재질을 뒤로 하고 옷장 앞에서 화가처럼 오늘의 컬러 팔레트를 정하는 거예요.
오늘의 기분에 어울리는지, 이너가 아우터와 맞는지, 전체적인 색감 조화를 이루는지 등 꼼꼼하게 봐야 합니다. 걸어 다니는 무지개일 수는 없으니까요.
포토샵의 컬러 피커가 없던 시절,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 보이는 색을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고르고 맞췄을까요? 파리에서 디자인만 하고 제작은 지구 건너편에서 하는데 제품의 색상은 정확히 동일해야 했을 때 팬톤에서 제공하는 '색상 표준 시스템'은 필수적인 도구였죠.
요즘 구글 검색 하나로 코드 별로 정리된 약 9,374,156,034,506개의 다양한 컬러를 공짜로 찾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팬톤에서 판매했던 100만 원이 넘는 컬러 북을 구매하는 방법밖에 없었답니다.
2000년부터 매년 올해의 컬러를 발표해 온 팬톤은 2025년의 대표 색상으로 '모카 무스'를 선정했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브라운 계열 색상입니다.
2025 팬톤 올해의 컬러 '모카 무스'
개인적으로 제 2024년의 컬러도 브라운이었어요. 주변 친구들이 놀릴 만큼 올해는 갈색 옷을 스무 벌 넘게 구매했을 겁니다. 내년의 컬러 픽을 본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맞아요. 지난 11월에 패딩까지 갈색으로 산 저는 역시 트렌드를 앞섰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독자님, 당신도 지금 트렌드를 앞서고 계십니다. 당신은 젠테 뉴스레터 구독자니까요.
구독자가 아니면 2025년 올해의 컬러를 알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매우 낮을 겁니다. 근데 색상 이론? 에디터의 트렌드 의식? 이런 건 솔직히 중요하지 않죠.
룩에 생기를 좀 더하고 싶은데 길거리에서 너무 눈에 띄는 건 부담스럽고 올블랙은 질렸는데 시선 강탈 하는 것도 싫다? 남색이나 짙은 회색만큼 괜찮은 초이스인 갈색의 세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도 칼로리 신경 써야 할 정도로 먹으면서 이 자연스러움과 안정감을 주는 색이 왜 옷장에는 이렇게 없을까요?
처음에 이 뉴스레터를 쓰면서 갈색 같은 흔한 색깔을 무슨 패션 혁명처럼 써도 되나 조금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들어보세요. 패션 혁명은 아니더라도 브라운이 남성 1위, 여성 2위로 불호 색인 게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젠테 에디터 J의 말로는 -> “비즈니스적 측면에서의 브라운은 고객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색에다가 차분함과 고급스러움까지 품고 있기 때문에 특히 서재를 꾸밀 때는 절대 제외해선 안 될 컬러다. 게다가 기분 좋은 경험들과도 관련이 참 많다. 고소한 커피 향과 달콤한 초콜릿, 싱그러운 흙 내음, 울창한 나무가 가득한 숲이 절로 떠오르니 말이다. 덕분에 브라운은 세상에서 가장 인기 없는 컬러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찾게 되는 컬러가 되었다. 특히 자연을 닮았다는 사실은 도시 생활이 일상인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 특징이라 볼 수 있겠다.”
저도 잠깐 올해의 컬러 1번 팬이 되어볼게요.
옷장 뒷구석에 갈색 옷이 좀 있기는 한데 무슨 색이랑 같이 입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갈색과 함께 가장 매칭이 잘 되는 색은 역시 저희가 모두 많이 가지고 있는 색입니다. 그게 무슨 색이냐고요? 네. 어떤 색과도 같이 페어링해도 잘 어울립니다.
그래도 그중에 가장 매칭이 잘 되는 색은요? 당연히 연한 갈색입니다. 티라미수처럼요. 티라미수는 맛만큼 비주얼도 예쁜 거 아닙니까?
이번 주 뉴스레터의 목표는 단 하나. 브라운의 불명예를 씻어주는 것입니다.
독자님은 어떠세요? 브라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마치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신 느낌인가요? 아니면 진흙으로 싸대기를 맞은 느낌인가요?
다양한 색과의 조화가 가능하며 모든 피부 톤에 잘 어울리고, 캐주얼은 물론 프로페셔널한 이미지 연출에도 효과적인 갈색. 이번 연말 쇼핑하실 때 올해 트렌드와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갈색을 활용하여 본인의 스타일을 완성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