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왜 어른들이 봄에 호들갑을 떠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방학과 스키장과 크리스마스가 있는 겨울이 훨씬 좋았고, 봄은 개학과 개강이라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계절일 뿐이었죠.
하지만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며 뼈밖에 없던 나무들이 새싹을 틔우고 꽃도 피우는 봄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봄에 하는 몇 가지 루틴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특별한 건 없지만 재미는 보장합니다.
남산 야외 식물원 탐방
남산타워가 있는 남산공원 말고 하얏트 호텔 맞은편에 작은 야외 식물원이 있는데요. 식물원이라기 보단 둘레길 같은 산책로에 가깝습니다. 여기는 구글 맵 리뷰가 700개밖에 없는 저만의 숨겨진 산책 코스이자 데이트 필승코스입니다.
봄을 맞이해 소개팅, 또는 데이트를 하시는 분들은 해방촌 → 남산 야외식물원 코스를 적극 이용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식물원 맞은편 후암동 406-40번지에서 보는 야경은 없던 로맨스도 싹트게 해줍니다.
침구 교체
겨우내 쓰던 무거운 겨울이불을 가벼운 봄 이불로 교체하는 중대한 행사입니다.
햇살 밝은 주말 대낮에 코인 세탁방에서 이불 빨래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건조기에서 갓 나와 뜨거운 이불의 섬유 냄새를 맡으며 집에 가는 것도, 새 이불을 깔고 어색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다 기분이 좋습니다. 봄이면 일요일마다 일광건조를 시키던 소대장님의 마음이 이제서야 이해가 갑니다.
옷장 정리
든든하게 추위를 막아주던 패딩과 코트를 세탁소에 맡기고 고이 접어뒀던 반팔과 티셔츠들을 다시 꺼냅니다. 보통은 침구 교체와 같은 날에 진행하는 1+1 행사이자, 겨울 동안 산 옷들을 보며 소비를 되돌아보고, 작년 봄여름엔 도대체 뭘 입고 다녔는지 모르겠는 옷장을 보며 새로운 쇼핑 리스트를 작성하는 루틴 업무 입니다.
양재 꽃 시장 쇼핑
어느샌가 연중 가장 큰 행사가 된 식물 쇼핑입니다. 날이 좀 따뜻해져 겨울 동안 집안에 들여놓았던 식물을 집 밖으로 내보낼 때가 되면 꽉 차있던 거실 식물존이 허전해지면서 새 식물을 들이는 무한 소비 굴레에 빠지게 됩니다. 식물을 키우지 않더라도 양재 꽃 시장은 공짜로 산림욕을 할 수 있는 인공 식물원이기도 합니다. 근처에 양재 시민의 숲도 있고 멋진 카페들도 많아 산책하기도 좋으니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계절의 변화는 지구의 공전주기에 따라 대기의 온도가 변하는 자연 현상일 뿐이지만 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활력을 가져다주는 요상한 현상같습니다.
그럼 저는 이번에 새로 들인 식물 하나 자랑하고갑니다. 모두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