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은밀하게 계획된 에디터 H의 점심 나들이. 팀원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점심시간 쉐이크를 후다닥 마시고 길을 나섰습니다.
3월 18일 화요일, 팀원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선포하다. (에디터 Y 답게 Y로 응답하는 에디터 Y)
오랜만에 혼자 갖는 점심시간, 즐거운 마음과는 대조적인 칼바람으로 몸을 움츠리며 도산공원 근처 '화이트 큐브'로 향했습니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6)
이번 전시는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가정에서 태어난 모나 하툼(Mona Hatoum)의 한국 첫 개인전이라고 합니다.
ⓒwhitecube.com
가벼운 전시 하나를 보고 오자고 마음먹었던 것과는 달리, 무거운 마음을 남겨준 작품 몇 점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정물-의료 캐비닛 VI(Still Life-medical cabinet VI)입니다. 이 전시를 보러 가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형형색색의 유리들이 제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죠. 전시장을 방문하여 자세히 물건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유리들이 수류탄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whitecube.com
전시장 곳곳에 놓여있던 작품에서 전쟁의 흔적을 느끼게 된 순간입니다. 레바논 출신의 작가는 런던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공항이 폐쇄되어, 이후 런던으로 이주했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일생에 전쟁이라는 것이 큰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두 번째 작품은 미스바(Misbah)와 라운드 앤 라운드(Round and round)입니다. 전시의 끝을 장식하는 미스바는 언뜻 보기에는 모빌처럼 보이는 몽환적인 색상의 설치 미술 작품인데요. 작품이 뱅글뱅글 돌면서 작품 내부에 있는 불빛이 지속해서 반짝입니다. 어두운 방 안에는 작품에서 새어 나온 주황 빛이 벽을 장식하고요.
처음에는 꿈꾸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방이 황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몇 초가 흘렀을까요. 이 벽을 장식하는 빛이 그리고 있는 것이 전시 초반부에 보았던 Round and round 작품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쟁 중인 군인이 지속해서 같은 공간을 돌고 있는 모습 말이죠. 그러고 나니 이 순간이 꽤 어지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돌아가는 저 작품에 제동을 가하지 않는다면, 벽을 타고 행군하는 병사들은 무한히 이 움직임을 계속할테고, 일정한 각도에서 보이던 반짝이는 주황 불빛은 계속 빛나겠구나(폭탄이 계속해서 터지는 것을 암시)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전시장이 크게 넓지는 않습니다만, 오랜만에 작품을 통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조금 찾아보니 패션과도 연이 있더군요. 그건 1995년 프랑스 보르도의 까르띠에 매장을 장식하던 'Hair Necklace' 작품인데요. 그 작품의 최근 연작도 보실 수 있으니, 4월 12일까지 짧게 시간 나신다면 들려보아도 좋겠어요.
3월 3일 봄이 막 찾아오던 무렵, 에디터 H는 집에 반려 식물을 하나 들였습니다. 양파쿵야를 닮은 생김새를 가진 히야신스. 새봄의 희망을 담으라는 마음에 희야쿵야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다습으로 식물을 자연으로 떠나보낸 경험이 많은 에디터 H는 이제 아예 물을 잘 안 줘도 되는 친구만 이 집에 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요. 2주에 한 번씩만 물을 먹으면 되는 '희야쿵야'가 오래오래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